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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의 기빙클럽 블로그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기금을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마련하는 기빙클럽의 첫번째 프로젝트 <히말라야 산타>를 이곳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팔 어린이들의 학교를 짓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봉사자들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밝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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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9:14 네팔, 그리고 아이들


박경림씨가 네팔 데비스탄 지역 학교를 방문하고 오셨네요. 산타 학교는 아니지만, 감동적이어서, 공유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 박경림, 박정훈 부부가 지난 1월 30일 5박 6일 일정으로 네팔의 데비스탄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데비스탄 지역의 안나푸르나 중등학교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현지의 파트너 기관인 GYC가 2009년부터 아동의 권리 증진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는 곳입니다. 박경림, 박정훈 부부의 특별하고 감동적인 네팔 방문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사진: 강민구 작가 / 글: 김민주 기자 (여성중앙)

두 손을 모아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하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나마스테’라고 답한다. 안나푸르나 산맥을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될 5일이었다.


       사진/ 박경림・박정훈 부부가 신축 교실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보통 건물을 반반 나눠서 다른 색깔을 칠한다.                                                  

하늘 아래에서 만난 아이들
지난 1월 30일 5박 6일 일정으로 박경림・박정훈 부부와 네팔의 데비스탄 지역을 다녀왔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네팔까지는 비행기로 총 7시간 거리였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우리로 치면 부산과도 같은 제2의 도시인 포카라로 이동했고, 흙먼지로 뒤덮인 거친 산길을 8시간 동안 차로 달린 후, 다시 3시간의 등산을 해야 했다. 이틀 동안 꼬박 스무 시간이 걸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학교인 네팔 안나푸르나 중등학교에 닿았으니 아이들을 만난 감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오르고 보니 해발 2500미터(한라산이 1950미터이다)란다. 그러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함께 오른 네팔인은 “이 정도는 낮은 동산”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껄껄 웃었다. 안나푸르나 중등학교에 한국인이 방문한 것은 공식적으로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예상보다 힘겨웠던 산행을 하느라 지치고 땀범벅이 된 이방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티카(빨간 가루)를 이마에 발라주고, 카다(하얀 천)를 목에 걸어주었다. 사실 박경림은 지난해 10월, 임신 6개월에 접어든 둘째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소식을 접한 기자는 지난봄에 그녀의 임신을 축하하며 나눈 통화에서의 밝은 목소리가 떠올라 가슴 끝이 묵직해졌다. 지난 연말 무렵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기자에게 봉사 활동 이야기를 건넸다. 그간 말로만 ‘나눔과 도움’에 대해 생각했는데, 이번에야말로 몸소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에 여성중앙은 그녀가 7년간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세이브더칠드런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며 함께 갈 곳을 찾아보자고 했고, 2009년부터 이 단체가 후원을 하고 있는 네팔 데비스탄의 안나푸르나 중등학교를 행선지로 결정했다. 박경림의 남편 박정훈씨도 우리의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싶다며 일주일간 회사에 휴가계를 제출했고, 그녀의 조카 이주원(16) 양도 방학을 마무리하며 의미 깊은 일을 하고 싶다고 동행했다.

“결혼 후 부부가 함께 매체에 나가는 건 처음이에요. 남편이 일반인이다 보니 사생활을 지켜주고 싶었거든요. 이번엔 무척 뜻 깊은 일이기에 부부가 함께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동행하기로 했어요. 남편이 회사 일로도 바쁜데 흔쾌히 가겠다고 해서 고마웠죠.”


     사진/ 마을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이들은 부부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박경림 부부가 방문한 데비스탄은 네팔의 바그룽 지역에서도 제일 외진 마을로, 아직까지도 인도에서 유래한 카스트 제도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소외된 이들이 특히 많이 사는 곳이다. 네팔의 계급 체계로 따지자면 하층민의 비율이 높아 경제 수준도 낮은 편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해서 딸은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일찍 결혼을 시키고, 생리를 할 때는 청결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가축과 함께 자게 하는 등의 악습이 상당 부분 남아 있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중등학교는 지난 1989년에 지역 주민들과 군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설립한 학교로 세이브더칠드런과 현지의 파트너 기관인 GYC는 2009년부터 아동의 권리 증진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지원을 해오고 있다. 가난과 차별을 더 이상 대물림할 수 없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만든 만큼 학교에 대한, 학생들을 향한 주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설립 초기에는 5학년까지만 운영하다 지금은 8학년(12세)으로 확대했고(네팔은 5세 때 학교에 입학한다), 최근엔 유아원 운영도 시작해 배움의 기회가 많아졌다며 타라바하둘 교장은 기쁜 마음을 환영사에 담았다.


     사진/ 아이들은 매일같이 2시간이 넘는 산길을 오르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네팔의 어린이들.                                                                         

사실 그동안은 교사 수도 턱없이 부족했고 제대로 된 교실이나 교보, 기자재등이 없어서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의 아이들 중 일부만 수용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하지만 지난 4년 사이 세이브더칠드런과 정부의 지원으로 교사를 충원하고 교실도 새로 증축하면서 학생 수를 늘릴 수 있었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오랜 내전을 겪은 네팔은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비스탄은 아이들의 교육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는 듯했다. 어른들의 뜨거운 열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푸르나를 놀이터 삼아 마음껏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은 백마디 말보다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사진/ 안나푸르나 마을 사람들이 박경림 이마에 발라준 빨간 가루는 티카로, 환영의 의미가 담겨있다.         


      사진/ 마을 사람들이 전통 악기 연주로 일행을 반겼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다
출국 전 공항에서 만난 박경림은 “어제 밤새 짐을 싸느라 잠을 설쳤어요. 그래도 아이들을 만날 설렘에 피곤한 줄도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이어 그녀는 시어머니가 아침 대용으로 먹으라고 싸준 떡을 기자와 일행에게 돌리면서 살뜰히 ‘왕언니’ 역할을 시작했다.

부부는 출발하기 전 2주간에 걸쳐 여러 문구점과 마트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샀다. 그리곤 기내에 실을 수 있는 짐과 한 사람이 화물로 부칠 수 있는 양을 체크해 총 100kg의 선물을 일일이 박스에 포장해 가져왔다. 학용품과 생필품이 많이 부족하다는 현지 정보를 전해 듣고 학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는 부부는 우선 공책, 연필 등 기본적인 필기구를 비롯해 축구공, 줄넘기, 탁구 라켓과 공, 장난감, 블록 등을 준비했다. 현지에 도착한 뒤 짐들을 풀어보니 포장 상자를 뜯어 부피를 최대한 줄이는 등 하나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들이 네팔로 봉사 활동을 떠난다는 사실을 안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줄을 이어 치약, 칫솔, 비누, 면 생리대(이곳은 여성용품이 비싸서 제대로 착용하는 이가 드물다), 장난감, 화장품 등의 기증품도 많았는데 모두 가져올 수 없어 안타까웠단다.

“어젯밤에 남편이랑 밤새 짐을 ‘쌌다 풀렀다’ 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담을 수 있을까 연구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더라고요(웃음). 남편은 선물을 박스에 넣은 다음 무게를 재느라 계속 저울에 올리고 내리고 해서 팔이 엄청 아플 거예요. 아이들을 돕는 데 쓴다고 하니까 기꺼이 물건을 내어준 지인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했어요. 어떤 분은 일단 당장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면 나머지는 현지로 배송해주겠다고도 하셨죠. 고생스럽긴요.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사진/ 데비스탄 아이들과 주민들은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로 타지에서 온 일행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들이 3시간의 산행 끝에 안나푸르나 중등학교에 도착하자 작은 마을이 들썩일 정도로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학교로 몰려들었다. 까만 교복에 원색의 귀여운 머리끈을 한 아이들이 운동장에 줄을 맞춰 앉아 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었다. 아이들이 직접 색종이를 접어 만든 꽃길을 따라 걷자 부부에게 티카, 말리(작은 꽃), 카다가 전해졌다. 몇몇 여학생은 스스로 개사를 했다며 수줍게 ‘환영송’을 불렀고 동네 어른들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반겨주었다. 어느새 박경림의 볼에는 눈물이 타고 흘렀다. “생각보다 힘들게 산을 올라 겨우 마을에 도착했는데, 우리를 마중 나온 마을 어른들,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들, 수줍워하면서도 우리 곁에 몰려드는 동네사람들을 보며 감동했어요.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환대를 해주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북받치더라고요. 정말 고맙잖아요. 해준 것도 없고 그냥 아이들을 만나러 온 것인데, 이렇게까지 반겨주니 말이에요.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어깨가 더 아프더라도 선물을 더 많이 가지고 올 걸…’ 싶은 마음에 미안해지더라고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교정 가득 모인 사람들의 풍경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부부는 교장 선생님과 세이브더칠드런의 현지 매니저인 라젠드라의 안내를 받으며 서둘러 아이들을 만났다. 학년별로 한창 오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학년 교실에는 책걸상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조별로 모여서 바닥에 엎드린 채 그림을 그리거나 숫자를 익히고 있었다. 전기시설도 부족해서 창을 통해 비치는 채광에 의존하는 교실은 꽤 어두웠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넘쳐났다. 한 교실에서는 컴퍼스를 이용해서 원을 그리고 시간 개념을 익히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지켜보던 박경림은 “좀 더 다양한 교육 자재와 학습 방법이 전달되면 좋을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고학년 교실에 가서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박정훈씨가 즉석에서 교사가 되어 칠판에 세계 지도를 그린 후 네팔과 한국의 모습, 거리등을 설명해주었는데, 아이들이 “네팔을 너무 작게 그렸다”고 장난스럽게 지적을 해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중등학교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1960년대 교실 풍경을 연상시켰다. 아직 부족한 것들은 너무나 많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모습, 개구쟁이들의 발랄함으로 생기를 띠는 것까지.

 
     사진/ 네팔인들은 보통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자식을 낳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학생의 수가 많다.                


      사진/ 안나푸르나 중등학교에서는 별다른 교육없이 지내는 5세 미만의 아이들을 위해 얼마 전부터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교실을 둘러본 후에는 학생들과 함께 지난해 완공된 신축 교실의 벽과 문에 페인트칠을 했다. 네팔 사람들은 유난히도 원색을 선호했다. 그들이 걸친 스카프나 옷, 집의 색깔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컬러풀 네팔’에 매료된 건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새 교실의 벽과 문 색깔로는 시원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진한 파랑이 선택되었는데, 우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려는 동네 주민들이 잔뜩 몰려들어 작업 현장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어 준비해 온 선물을 꺼내놓으면서 용도를 설명해주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은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의외로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혹시 몰라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필름 60장을 준비해 왔다는 부부는 아이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주며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필름을 앞뒤로 돌려보다가 이내 자신의 얼굴이 필름에 나타나자 무척 좋아하며 옆 사람에게 자랑을 했다. 마치 슈퍼스타를 팬들이 감싸듯, 부부 곁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자기 아이의 사진을, 혹은 자신의 얼굴을 찍어달라고 했다. 박정훈씨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인기에 기뻐하면서도 좀 더 세심하게 준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는 처음엔 낯설어서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용기를 내서 왔는데도 필름이 다 떨어져 찍어주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미안했다고 했다.


       사진/ 박정훈씨는 민준이가 크면 아들과 함께 이곳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기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생필품을 선물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깊이 고민해서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선물을 더 많이 가져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후회가 남더라고요. 전교생이 300명이니까 모든 아이의 얼굴을 다 찍어줄 수 있게 힘들더라도 가방에 필름 300장을 가득히 챙겨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아내도 그 부분을 많이 안타까워했고요. 이곳의 모든 아이에게 우리가 머물렀던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면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네팔 사람들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서 이것저것 참 많이 준비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맘이 많이 쓰여요.”

이날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동네의 아기들에게도 작은 선물이 전달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하고 있는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을 통해 모인 정성이 가득 담긴 모자를 아기들에게 씌워준 것이다. 네팔은 일교차가 심하고 집 안에 난방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밤이면 무척 쌀쌀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특히 한 살 미만의 아기들에게 모자는 필수품이었는데, 한국 사무실에 전달된 모자 가운데 특별히 예쁜 것들을 선별해서 가져왔고 박경림 부부는 직접 아기들에게 이를 씌워주면서 건강하고 밝게 자랄 것을 바랐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 기산뿐을 데리고나온 엄마 수실라뿐은 “모자가 정말 예쁘고 아기에게도 잘 어울려서 행복해요. 이렇게 먼 곳까지 우리를 위해 와줘서 감사해요”라며 수줍게 말했다. 

이방인도 포근히 안아주는 네팔 사람들의 넉넉한 품…
박경림 부부는 내내 “도움을 주려고 온 우리가 오히려 더욱 큰 사랑과 대접을 받고 가는 것 같아 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특히 박정훈씨는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네팔이라는 나라 자체가 좋아졌어요. 외국인인 우리를 낯설어하면서도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하면 해맑게 웃으면서 받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했다. 학교를 방문해서 준비해 온 선물을 나눠주고,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정만 예상했던 부부에게 마을 사람들은 더욱 뜻깊은 시간을 마련해두었다. 학생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모두 나서서 전통 춤과 노래, 공연 등 한바탕 축제를 벌인 것이다. 공연 내용에 어울리는 의상을 통일해서 입은 것은 물론이고, 주술적인 몸짓과 독특한 몸짓이 결합된 일종의 ‘댄스컬’도 선보였다. 학교 옆 공터에 가득 몰려든 마을 사람들은 ‘네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용맹하다’ ‘이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이라 평화롭다’ 등 네팔의 전통과 자부심이 담긴 노래를 들려주면서 자신들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흥이 돋자 마을 사람들은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서 함께 춤을 추자고 부부의 손을 이끌었다. 박경림 부부는 멋진 노래(박경림의 불후의 명곡인 ‘착각의 늪’이 안나푸르나 산등성이에 울려 퍼졌다!)와 함께 귀여운 율동을 선보여 마을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는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집주인은 우리를 위해 귀한 버펄로 우유를 끓여오고, 웬만해서는 잘 먹지 않는 비싼 사과와 토마토 등을 식사 때마다 접시에 담아냈다. 난방이 되지않는 집이라 밤이 되니 스산했지만 그들이 준비해준 따뜻한 새 이불을 덮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러 가는 길에 손님들에게 방을 내주느라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도 흙마루에서 새우잠을 청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네팔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하고 진심 어린 환대를 떠올리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사진/ 홈스테이를 하게 된 집에서 한국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비빔국수를 만든 박경림.          
     그 맛은? 비밀로 하자.                                                                               

아이 떠나보낸 후 깨닫게 된 진정한 사랑…
부부와의 정식 인터뷰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진행됐다. 네팔로 봉사 활동을 오게 된 계기부터 되짚다 보니 그동안 굳이 말하지 않았던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박경림은 임신 6개월이던 지난해 10월 별다른 징후 없이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조기 양수 양막 파열로 아이를 잃었다.

박정훈씨는 “우리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작년에 민준이 동생이 먼저 하늘로 갔잖아요. 그 동안은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한다면 같이 돕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직접 실천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비록 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나눌 수 있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욱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박경림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7년째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신생아를 살리기 위해 모자 뜨기를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잖아요. 그동안은 ‘가슴’보다 ‘머리’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그렇게 잃고 나니까, 모자를 떠서 정말로 아기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백 개도 천 개도 뜰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아픈 일을 겪으면서 남편이랑도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도울 수 있는 진심이 생겼다’고요. 사실 정말 마음이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얻은 것도 많아요. 제가 그런 일을 겪자 자신도 유산을 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위로를 해주는 주변 분들이 많았거든요.

정말 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전엔 그런 아픔을 갖고 있는지 몰랐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겉으로는 다 웃고 있지만, 마음속엔 저마다의 사정이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라던 박경림은 “우리 아이였지만, 우리 부부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해요…. 지금은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인터뷰 내내 기자와 부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이야기를 하다 말다 몇 번을 쉬어야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부부는 기분 좋은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마을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지속적으로 ‘학교에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처음에 부부는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당황했지만 곱씹어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박정훈씨는 “우리가 마을에 머문 시간은 고작 하루였잖아요. 마을 어른들은 그만큼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부모 세대처럼 가난하게 농사를 짓거나 관광객들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 일을 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면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컴퓨터는 사주고 싶은데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되니까 우리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게 있다면 뭘 해서라도 가져다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 그런지 생각할수록 그 마음이 느껴져서 더 가슴이 아프더라고요”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남편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박경림은 2월 20일부터 JTBC의 주부 대상 아침 토크쇼인 ‘박경림의 오! 해피 데이’(월~목 오전 11시)를 진행하기 위해 바쁜 일상을 준비해야 했지만, 이들은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서 얻은 에너지와 타인을 향한 관심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네팔에서의 시간들을 기록한 메모와 사진들을 뒤적이던 기자는 박경림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온몸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려 일명 ‘댄싱 로드’라 불린다는 거친 비포장 산길을 차로 달리던 중이었다.

“우리가 네팔에 온 건 ‘마크툽’ 같아요『연금술사』에 나오는 말로 ‘결국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됐었던 것이다’라는 뜻이죠. 제가 참 좋아하는 단어예요. 우리가 지금 네팔에 함께 있으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 지금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전부 다 ‘마크툽’이에요. 인생은 이래서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사진/ 일행은 현지 가정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데비스탄 주민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했다.    

해외아동교육지원

네팔 아동들에게
사랑을 전해주세요!

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7/12 13:00 네팔, 그리고 아이들

 

얼마 전, 한국은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면서요? 아니, 그 추운 날씨에 감기는 안 걸리셨는지 모르겠네요. 여기 네팔은 어떻냐구요? 히말라야 꼭대기는 여전히 눈으로 뒤덮혀 있지만,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 곳은 낮에는 작렬하는 태양 때문에 섭씨 20도까지 기온이 오르고 새벽에는 0도까지 내려가는, 일교차가 20도나 나는 곳이랍니다. 게다가 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네팔의 집에는 일체의 난방 시설이 없어서, 양말, 목도리, 털모자, 오리털 점퍼를 입은 채로, 이불 두 개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라고 해서 더워만 지는 여름을 걱정했는데, 변종 엘니뇨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살인적인 한파와 폭설, 홍수, 가뭄 등을 몰고 온다고 하니, 기후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가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바그룽에도 지구 온난화가 끼치는 영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가네쉬 중등학교 재학 중인 수라쥐는 최근에 와서 집 앞 옥수수 밭에 옥수수가 잘 열리지 않거나 알이 꽉 차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수라쥐의 마을에서 많이 생산되어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되었던 잭푸르트라는 과일은 예전보다 훨씬 일찍 익어버리고, 맛도 없어져 시장에 갖다 팔기가 어려워졌구요.
또한 수라쥐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네팔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는 커다란 모기가 이제는 수라쥐의 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라쥐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은 하지 못하더라도, 해가 거듭될수록 더워지는 날씨와 잦아지는 가뭄을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진/ 수라쥐와 급우들이 기후변화가 각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네팔에서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총 인구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홍수나 산사태로 연결되면 주민들은 완전히 마을에 고립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여름 심각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네팔의 여러 마을이 고립되었고, 이들에게 비상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는 헬기를 동원하여 물과 식량을 전달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진/ 홍수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쟈미야 이슬라미야 초등학교에 구호품을 전달중인 세이브더칠드런


식량자급도가 매우 낮은 네팔의 미들힐즈 지역 주민들은 곡식을 네팔 남부나 인도에서 사먹을 수 밖에 없는데, 최근 세계적인 식량가격 폭등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가계의 소득원인 땅이나 가축을 팔 수 밖에 없고, 이 순간부터 장기적인 빈곤의 악순환에서 나오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참가국들은 전지구적으로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인정했지만, 자국의 경제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안건들에 동의하는데에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나라의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쌀이나 밀 재배로 사용되던 땅이 바이오 연료를 재배하는 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또 곡물가격 급증으로 이어지겠지요.
우리가 자각없이 낭비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또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해, 특히 개발도상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니, 생명의 위협을 주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얼마 전 UN은, 어떤 특단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고, 지구 온난화가 지금과 같이 진행될 경우,  2035년에 이르러 히말라야 산맥의 그 어떤 곳에서도 눈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제식량기구 (WFP)에 따르면 네팔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을 전세계 10개국 중 하나라고 합니다.

개발도상국의 아동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슬그머니 저희 세이브더칠드런의 회원가입 신청서를 건넵니다. 여러분의 후원금으로 지난 여름 네팔에서 바그룽 지역에서 일어난 산사태에 모든 것을 잃은 가족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임시 캠프를 치고, 식수, 식량, 상비약 등 생존에 필수적인 구호품을 전달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충격에 빠진 지역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직업교육, 소액자본대출 등의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충격과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지역 아동들이 충분한 보호를 받고,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힘쓰는 것도 저희 사업의 우선순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네팔의, 아니 전세계 개도국의 아동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고 물어온다면, 추운 겨울을 위해 난방기기를 더 많이 틀기보다는 옷을 한겹 더 입어달라고 부탁하려구요 (이번 기회에 빨간 내복이라도 한장 장만하시는게 어떨까요?). 또한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공중교통수단을 더 자주 사용하시구요 물건을 사실 때는 환경마크가 부착된 것에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작은 노력이지만, 누구든지 각자의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노력입니다. 이런 미약한 시작이 계속되면 파장은 커지고 우리의 삶의 방식도 조금씩 변할테니까요.

수 천마리의 물고기들이 모래사장에 버려졌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사람이 나타나 죽기 직전의 물고기를 집어서 바다로 옮기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당신이 그렇게 노력해도 그 많은 물고기들을 모두 바다로 옮길 수는 없소!" 라고 말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더라도, 한마리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이 한마리 한마리의 물고기들은  다시 생명을 얻는 거니까요."

세상에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 최소한의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당장 도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돕는 한 명, 한 명의 어린이에게, 이 도움은 그들의 평생을 바꿀 수 있는 도움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집과 모든 살림살이를 잃었지만 이렇게 건장한(?) 어린이들이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을거에요.
        (쟈미야 이슬라미야 학교로 대피한 주민들의 모습)


사랑을 나눠주세요~ !






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7/05 11:55 네팔, 그리고 아이들

지난 11월 20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에 사는 약 1 만 명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들도 업무를 마치자 마자 모두 쟈와라켈 사거리로 집결했습니다. (아동)권리 락 콘서트 (Rights Rock Concert)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지요.

"아동권리 락 콘서트?",
무슨 말인지 아마 생소하게 들릴 거예요.
네팔 사람들도 처음에는 모두 같은 반응이었으니까요.

1989년 11월 20일 유엔(UN)은 어린이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 등의 권리를 포함하는 아동권리협약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을 채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동이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네팔 역시 이 협약을 비준한 193개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세이브더칠드런은 네팔에서도 이 협약을 바탕으로 네팔 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네팔 아동의 권리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미깊은 협약의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정부 관련 부처와 유니세프(Unicef), 다양한 NGO들이 행사를 준비해왔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매년 아동권리협약을 기리기 위해 신문과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아동권리에 대한 소개함을써 대중인식을 높이고 교육부 공무원들과 유엔 관계자들, 아동 대표 등을 초대하여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를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들이 와서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고 사진을 찍는 "그 뻔한 기념행사"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해 보자는 의견이 세이브더칠드런의 혁신팀을 통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정부, 유엔, 타 NGO 관계자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네팔 전국에 있는 아동들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네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장년층과의 커뮤니케이션 및 협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문제의식은, 아동권리를 주제로 한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청장년층의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고 그들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내자"라는 아이디어로 연결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로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네팔의 인기 락밴드 (네팔의 윤도현 밴드라고나 할까요?) 1974AD 가 자발적으로 공연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네팔계 캐나다 교포가수인 로빈도 자신의 밴드와 함께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이 외에도 네팔의 나훈아로 불리는 니마 룸바, 최근 최고의 남자가수상을 받은 얼짱가수 수캄 포카웰, 네팔의 이미자로 불리는 쿤디 모칸까지 총 다섯 그룹이 "권리 락 콘서트"에 참여의사를 밝혔습니다.

유일한 여자 가수였던 쿤디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섯 곳의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네팔 여자아동의 현실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특히 여아가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하고 전통에 따라 시집을 가는 조혼의 풍습은 타파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라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온 로빈은 관람석을 향해 "네팔 국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그 동안 네팔 전국에는 많은 학교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많은 병원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동생과 자녀들이 최소한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네팔을 건설하는데에 앞장서야 한다." 라는 흡입력 있는 웅변(?)을 했습니다.

로빈은 캐나다 교포여서 그런지 저보다 더 어눌한 네팔 말을 구사했지만 메시지 만큼은 정말 감동적이었답니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1974AD가 한국으로 치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같은 국민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이를 아끼고 사랑하자라는 아름다운 가사가 그 자리에 있던 약 1만 명의 관중의 목소리로 따라 불려지고 꽃과 같이 아름다운 아동들이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솔직히 만 명이나 되는 관중이 오리라고는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답니다.

엄마를 따라 공연을 보러 온 어린이도 보이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동권리 콘서트를 보러 왔다는 사실을 저 어린이도 알까요?

이 의미있는 행사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만 명의 관중 이외에도, 라디오를 통해 네팔 전국에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또한 본 행사를 전후하여 중국의 신화통신을 비롯한 국내외 방송이 세이브더칠드런의 획기적인 아동권리 행사를 취재해갔답니다.

취재의 열기도 후끈! 1974AD의 보컬을 맡고 있는 애드리언의 결연에 찬 표정이 돋보이는군요.

“콘서트 할 돈으로 시골에 학교나 하나 더 짓지”라고 빈정대던 사람들조차 만 명이나 되는 청년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과, 라디오 중계방송이 진행된 세시간 반 동안 네팔 전국이 방송에 귀를 귀울였다는 후기를 보고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의 “내일은 늦으리”와 같은 환경콘서트나, “드림콘서트”와 같은 청소년 콘서트처럼, 이번 “아동권리 락 콘서트”는 네팔에서도 아동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 같아 저희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콘서트 장소 앞에는 큰 배너를 설치하여 아동권리에 대한 소개, 그리고 서명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한 아동이 자기의 이름을 쓰고 있군요.

과일 행상을 하며 자식들을 모두 학교에 보냈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할아버지도 계셨구요,

내년이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들떠있는 어린이도 있었어요.

쫄바지 보따리 장사를 하는 한 아저씨도 아동들이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서명운동에 참여해주셨어요.

 후원하기 

 


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6/29 11:20 네팔, 그리고 아이들

지난 호에 소개했던 바그룽 사업장이 크고 작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는 전형적인 미들힐즈 지역이라면, 오늘 소개할 카필바스투 사업장은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 지역인 테라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들힐즈 지역의 땅보다 생산력이 높은 옥토로 이루어진데다가, 인도와 인접한 까닭에 네팔 인구의 50%가 살고 있는 중심지이지요. 좀 더 농사 짓기 좋은 땅을 찾아 네팔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지역의 경제 부흥을 위한 국가적 정책을 따라 미들힐즈에서 이주한 사람들도 있어, 처음에는 미들힐즈 지역보다 다양성이 보장 되는 곳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힌두교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근접성이 좋은 이웃나라 인도와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이유로, 카스트의 구별이나 힌두교의 금기사항이 더 엄격하게 지켜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최빈국인 네팔, 그 서부에 위치한 카필바스투에 사는 아동들이 학교를 갈 수 있게 돕는 것은, 가족의 가난한 살림살이와, 뿌리 깊은 카스트의 영향 때문에 더욱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림1 학교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와나가 VDC의 다모덜 초등학교

소를 키우는 외양간인줄만 알았던 이 곳이, 이미 백 명이 넘는 아동이 등록되어있는 초등학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미 캄보디아와 네팔의 시골 학교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학교” 시설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낮은 제게도, 이 학교는 충격이었습니다. 

원래 이 지역에는 학교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육열이 좀 있는 가정의 아동들은 마을에서 3km 떨어진 인도의 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말 그대로 “해외 유학”을 가는 것이지요. 네팔의 국민으로써, 무료 초등교육의 권리가 있지만, 마을에는 학교가 없으니, 돈을 내고서라도 외국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밖에요.

그림2 인도에 있는 학교로 매일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유학파” 어린이들. 왠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마을의 유지 한 분이 땅을 기증했고, 거기에 마을 사람들이 임시 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에 사는 취학 연령의 미취학 아동 100 여명을 학생으로 등록해 교육부에 학교 인가를 신청한 것이지요. 정부에서 이 학교를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는 정부의 지원 하에 제대로 된 학교 건물이 세워지고, 교사가 파견되어 나올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지을 역량이 부족한 네팔 정부에게 이런 방법으로 학교 지원을 받아 내는 것은 이미 널리 쓰이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 희망에 들 뜬 저는, “그럼 인도로 등교하는 친구들도 이제 몇 달 후면 마을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겠군요!” 라고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 처자가 모든 것이 빨리 빨리 진행되는 나라에서 온 모양이라며 웃었습니다. “빠르면 한 3년 걸릴거야” 라는 답이 듣고 저는 그 자리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 마을의 주민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우리가 이 곳에 학교를 지어준다면, 지역 교육청은 주인의식을 잊고, 앞으로도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돌릴 것입니다. “당신들이 지어 준 학교이니, 교사 수급도 당신들이 책임지고, 앞으로 모든 지원도 계속하시오” 라는 반응은 비단 네팔이 아니라도,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단 지역 교육청이 최대한 빨리 이 학교를 인가하고, 지원을 시작할 수 있게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무료 초등 교육을 제공할 책임이 있는 지역 교육청과 중앙 정부를 향해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저희가 할 일 중 하나입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동시에, 현재 마을 사람들이 모은 돈으로 채용된 교사에게 다양한 훈련을 시킬 계획입니다. 교원 자격이 없는 분이지만, 학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이 임시 교사는 앞으로 저희로부터 “아동친화적 교수법”과 “적극적 교수법” 등을 전달 받고, 수업 시간에 쓸 수 있는 교재도 제공받게 될 것입니다. 

그림3 수업을 받으러 모여든 아동들-오늘은 네팔 글자 중 자음을 배우는 날

어느 부모 아래서 태어났느냐에 기초해 수십, 수백의 계급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카스트의 전통이,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저희 Rewrite the Future 프로그램의 큰 장애로 작용할 것임은 명약관화합니다. 하지만, 수천만 명의 어린이들의 미래를 미리 결정 짓고, 더 나아가 그들의 내세까지 결정하는 카스트 제도에 대항하여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바로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우리는 수 백년 동안 이어진 그 부당한 제도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카스트의 어린이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인분을 먹도록 강요당하는 일이나, 높은 카스트의 친구와 다투었다는 이유로 돌팔매질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힘쓰겠습니다. 대신, 모든 아동들이 카스트와 상관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고, 학교를 중심으로 아동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되는 문화가 이 지역에 자리잡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 (KOICA)과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하는 이 의미 있는 변화에 여러분도 참여하시지 않으시겠어요?   

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6/23 10:30 네팔, 그리고 아이들

 

포카라에서 12시간 차를 몰아 부티방 바자르에 도착했습니다. 거리 상으로는 그리 먼 곳이 아니었지만 650m~4300m 높이의 산들이 위치한 네팔의 중부(Middle Hills) 지역에서 이동하는 일은, 좁은 비포장 산길을 굽이굽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아주 어렵답니다. 끊임 없이 덜컹거리는 차에서는 책을 보기는커녕 잠시 졸기도 힘들고요, 산 길 곳곳에 산사태가 일어나면 그게 치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근무할 때는 7시간 버스를 타고, 마을까지 다시 오토바이로 30분~1시간 들어가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제는 캄보디아가 천국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립네요.

저녁 8시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는 모기장이 없어 뜬눈으로 모기에게 헌혈을 해주고 나니,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일정이 부담스럽기도 했지요. 하지만 숙소에서 저희 사업장이 있는 바그룽 데비스탄(Devisthan) 지역까지는 최소 두 시간을 “걸어서” 산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늦잠을 잘 수는 없었습니다.



작지만 깔끔했던 나의 숙소-78마리의 모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네팔에서도 그 동안 분쟁의 영향 때문에 아동의 학교 등록률이 가장 낮았던 바그룽과 카필바스투 지역에서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그룽 지역의 59개 VDC(Village Development Committee의 약자로 쉽게 “큰 마을 덩어리”로 볼 수 있습니다) 중 저희 사업장으로 선정된 데비스탄과 다링이라는 두 VDC는 염소나 당나귀가 다닐 정도로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탈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숙소 앞에 차를 세워놓고, “두 시간”이라고 하는 거리의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불평 없이 열심히 산을 탔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제가 희망 섞인 목소리로
“이제 한 시간 왔으니까 한 시간만 더 가면 학교가 나오는 거죠?”,
라고 묻자,
파트너 기관의 직원이
“…… 이제 두 시간 정도 더 가면 될 거 같아요” 하더군요.

제가 “처음엔 두 시간 걸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라고 하자,
직원은
“보통은 두 시간이면 되는데, 당신 걸음이 느려서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조금”은 전혀 조금이 아니었고 세시간 반을 걸어서야 저희가 일하는 12개의 학교 중 첫 번째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수학여행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어요. 속리산 문장대를 오르는데, 선생님께서는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돼~” 하셨지만, 그 “조금”은 전혀 조금이 아니었던 그 악몽 말이죠.



보통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웃는 편인데,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어요.

2500m 높이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초등학교에는 다섯 명의 선생님께서 300여명의 아동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두 개의 건물에는 8개의 작은 교실들이 있었고, 지붕이 없는 두 칸의 작은 화장실이 학교 옆에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이 지역에 사는 아동들이 모두 학교에 입학하여 중도에 학업을 멈추지 않고 졸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안나푸르나 초등학교 외에도 31개의 학교와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저희의 교육지원 사업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입학은 했지만 교복을 살 형편조차 되지 않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희의 방문을 축하하기 위해 학교 앞에 모여든 어린이들과 학부모들.
산꼭대기 학교에서는 구름도 손에 잡힐 듯 합니다.


 
P.S. 참, 다음 대상 학교는 안나푸르나 학교에서 6시간을 더 걸어 가야 나온다고 하니,
        저는 곧 등산전문가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후원하기 

 

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6/14 16:24 네팔, 그리고 아이들

 

여러분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캄보디아에서의 봉사단원으로써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후, 한국 3월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채 감기에 걸려 거의 한달 내내 집에서 두문불출 했었답니다. 그리고 3월 말 몸을 추스르자마자,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해외사업장 파견직원으로써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아이들을 구하기) 하기도 전에 네가 먼저 쓰러지겠다”는 친지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앞으로 5년간 네팔에서 진행되는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Rewrite the Future 사업을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Rewrite the Future 사업이 무엇이냐고요?
 
지난 2006년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설립 이후 최초로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제세이브더칠드런연맹 회원국이 공동으로 Rewrite the Future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답니다. 이는 분쟁지역 및 분쟁영향지역의 절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과 분쟁지역의 원조를 기피하는 후원자들의 성향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교육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는 아동들에게 교육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캠페인입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왜 전쟁을 그만두어야 하는 지, 투쟁과 약탈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지에 대해 배우게 되지요. 비폭력적 삶의 가치에 대한 가르침은 그 아동들이 폭력과 불안에 길들여진 어른으로 성장하여 또 다른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고, 평화롭고 생산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2006년 캠페인 시작 이후 교육을 받지 못하는 분쟁지역 및 분쟁영향지역 아동의 수는 4천 3백만 명에서 2008년 9월 3천 7백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큰 성과이지만, UN의 새천년개발계획목표(MDG) 중 하나인 전세계 초등교육의 100% 보급을 실현하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 이제 네팔의 사정을 살펴볼까요?
 



                          네팔 중서부에 위치한 바그룽과 인도 국경 지역에 위치한 카필바스투가 보입니다
 
 
세계 14개 최고봉 중 10개를 가진 나라인 네팔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 산과 아름다운 안나 푸르나 트랙 등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다양한 민족과 그에 따르는 풍부한 문화 덕분에 관광객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나라이지요.
 
하지만 네팔 사람들의 삶은 고단합니다. 연간 1인당 수입은 미화$230로써 인구의 31%가 빈곤선 이하의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며, 무엇보다 교육의 측면에 있어서는 6세 이상의 인구 중 문맹률이 54%에 이르고, 총인구의 50%에 이르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조차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도 특히 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바그룽과 카필바스투라는 지역에 있는 32개의 학교에 앞으로 5년간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사업의 지원으로 올 해 말까지 천명의 아동들이 학교에 등록을 하고, 사업이 종결되는 2013년 말까지는 총 5만 여명의 어린이들이 아동친화적인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도, 장애아동도, 산에 사는 어린이도, 평야에 사는 어린이도, 
                                                       모두 학교에 가자는 내용의 포스터

 
부모님의 걱정처럼 이번 근무로 제가 혼기를 놓치게 된다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이렇게 의미 있는 캠페인의 사업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흔쾌히 네팔로 파견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네팔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이더군요. 직항을 이용하면 인천에서 7시간이면 도착하는 이번 비행은, 특히 히말라야 산맥을 지날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때문에 평생 잊지 못할 비행으로 기억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상공을 가르던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한참을 내려온 뒤 착륙을 하는 일반적인 공항과는 달리, 카트만두 공항은 구름을 뚫고 내려오자마자 활주로가 있어 신기했답니다. 역시 고도 1300m에 위치한 도시 답지요?
 
제가 도착한 날 세이브더칠드런 카트만두 사무실은 그 다음 날 있을 Unified Presence 준비로 매우 바빠 보였습니다. 네팔에는 이미 1981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 미국과 노르웨이가, 1992년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일본이 각자의 사무실을 두고 아동권리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2009년 4월부터 이들이 세이브더칠드런인네팔(Save the Children in Nepal)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하게 된 것입니다. One Voice for Children(어린이를 위한 하나의 목소리)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앞으로는 다양한 나라로부터 지원되는 프로젝트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 집행될 것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저희 역시 네팔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세이브더칠드런 노르웨이, 미국, 일본 등과의 긴밀한 협조로, 앞으로 최대한 많은 네팔 아동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수 있게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세이브더칠드런 노르웨이, 일본, 미국, 한국에서 이젠 모두 함께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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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
2010/05/11 10:25 네팔, 그리고 아이들
세이브더칠드런은
네팔의 카필바스투라는 곳에서 어린이들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도 하는데요.

며칠전 세이브더칠드런 네팔 사업장에 있는 직원이,

네팔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라면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순간, 이게....뭔...



처음엔 파일을 잘못 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각도로 찍은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Kalika 초등학교라는 곳인데, 지붕하나 달랑있는 건물(?)입니다. 어린이들이 그늘을 피할 공간조차 없어서 여기에서 수업을 받는다고 하네요.
 Kalika 초등학교에는 총 205명의 어린이들이 등록돼 있고 번갈아가며 이곳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합니다.

The two different schools that you see are the only learning space that children have in their area. Kalika Primary, as you see is in picture is the space that 205 children have as school building. It has tin roof with wood stands. There is no other alternative for children beside small shed.

 






아래의  Madarasa 학교는 위의 Kalika 초등학교보다는 훨씬 나아보입니다.



교실은 2개 정도 있고, 157명의 학생들이 수업하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아직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위의 두 지역의 학교를 지어주는 기금을 마련해 11월 네팔로 떠날 자원봉사를 모집했는데요,
참가자 정원이 이제 확정되었습니다.  ^_^


아이들이 벌써 보고 싶네요


. 앞으로 몇 달간 이 지역 학교를 지을 기금을 마련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많은 응원 해 주세요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 클릭.)

http://www.sc.or.kr/sc/news/noti_view.php?idx=1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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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이브더칠드런